활명수이야기
1897왕들도 마시던 소화제
활명수는 고종임금께서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시던 당시 궁중 선전관이었던 민병호 선생께서 궁중비방을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개발한 국내최초의 신약이다.
127현재나이
활명수는 1897년 서울 순화동 5번지에 동화약방이 설립된 이래 127년간 한국인의 소화제로써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1919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던 소화제
일제치하, 본사에 비밀행정기관인 서울 연통부를 설치하고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의 일부로 독립자금을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서울시에서는 이를 기념해 1995년 동화약품 자리에 연통부 기념비를 세웠다.
44가지 기네스 기록
1996년 한국기네스협회로 부터 국내 최고의 제조회사, 최고의 제약회사, 최초의 등록상표(부채표), 최초의 등록상품(활명수) 4개 부문에 걸쳐 기록을 인정하는 인증서를 받았다.
99.8제품인지도 99.8%
1910년대 60여종의 활명수 유사제품이 난립하였지만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부채표 캠페인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강화하며 소화제 대표브랜드의 입지를 다졌다.
8,500,000,000지금까지 판매량 85억병
활명수의 현재 총 판매량은 85억병을 넘어섰으며, 이는 전세계 인구 약 65억명이 1병 이상을 마시고 남을 수량입니다.
25빈병을 일렬로 세우면 지구 25바퀴
까스활명수 병 높이는 12cm이며, 현재까지 판매된 까스활명수 병을 가로로 눕히면 지구 25바퀴를 돌 수 있습니다.
1111가지 생약성분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의 활명수는 11가지 생약성분으로 제조, 4세대에 걸쳐 우리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소화제의 대명사입니다.
501910년 가격 50전
1910년대 활명수 1병의 값은 50전으로 설렁탕 2그릇에 막걸리 2~3잔을 사먹을 수 있는 수준의 상당히 귀한 제품이었습니다.